금융위기 어제와 오늘
오늘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때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모습과 금융위기 때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그리고 위기가 온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금융위기의 서막
2008년 9월 9일 미국 4대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주가가 하루 만에 45% 폭락을 합니다. 그리고 6일 후 9월 15일 150년 역사에 빛나던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을 선언하자 같은 날 미국의 3위 투자 은행인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인수되었고 당시 세계 1위 보험 회사였던 AIG 역시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파산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형 금융 기관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대공황 이후 찾아온 최대 위기라고 불리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한국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악몽이 펼쳐졌습니다.
이 끔찍했던 악몽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던 걸까? 시작은 1929년 대공황 시기부터 시작됩니다. 1920년대 초 중반에는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미국의 은행들은 방만한 투자를 했었지만 1920년대 말 경기가 급격히 식어 버리면서 문제가 터집니다. 위험한 투자나 대출을 해줬던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상당수의 은행이 줄도산을 했고 금융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미국 정부는 대공황의 재현을 막기 위해서 한 가지 법을 만들었는데 ‘글래스 스티걸 법’이라고 미국의 은행들이 증권사에서는 할 수 있는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강한 규제를 한 법입니다. 그로부터 약 60년간의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사람들은 글래스 스티걸 법이 낡은 유물이라면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1920년대에 비하면 전 세계 금융 산업은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당시와 같은 규제는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1999년 10월 대공황 때 제정된 글래스 스티걸 법이 폐지되었습니다.
우량채권 없으면 만들면 돼
그렇게 미국의 상업 은행들은 이전보다 활발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은행이 증권 투자, 보험 가입, 채권 매매는 물론 부동산 개발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전 세계는 금리 인하로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규제까지 풀리니 은행들은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 늘어난 유동성은 위험한 자산에 흘러 들어갔지만, 상당 부분이 우량 채권에 투자되어 채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신용도가 높은 국가나 회사의 채권은 신용 등급이 트리플 A(AAA)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불과 여섯 개의 회사만이 트리플 A 등급이었다고 합니다. 트리플 A 채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우량 채권의 씨가 마르고 있으니 신용평가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시장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가짜 트리플 A 채권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가짜 트리플 A 채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선 우량한 채권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는데 채권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자산의 안전입니다. 당시 미국 주식은 다컴 버블의 붕괴를 겪으며 40%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주식은 안전 자산이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대다수였고 당시 미국의 부동산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꾸준히 우상향 해왔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중에서도 거주지로서 사람들의 수요가 가장 많은 주택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금리는 낮은 상태고 미국 은행들은 규제가 완화된 상황 그리고 우량 채권의 수요가 몰리는 와중에 주택 시장은 안전하다는 인식에서 그 유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바탕으로 트리플 A 등급의 채권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채권에 채권에 채권
은행들은 주택을 담보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 줬고 대출해 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그 대출에 대한 차용증을 받습니다. 차용증 자체가 채권인 셈이고 안전한 주택을 담보로 한 채권이 됩니다. 은행은 대출로 돈을 더 벌고 싶었으나 대출해 줄 수 있는 한도가 오자 이때 모기지 회사가 등장을 합니다. 모기지 회사는 은행이 갖고 있는 주택 담보 대출 채권 즉 모기지 채권을 매입합니다. 그럼 은행은 원래 채권 하나하나를 통해 대출 이자를 받고 있었는데 이 채권들을 모기지 회사에 파니 목돈이 생깁니다. 그렇게 생긴 현금으로 새로운 대출을 해줄 수 있습니다. 모기지 회사는 구입한 채권들을 하나로 합쳐서 한 명, 한 명에게 따로 이자를 받는 적은 금액의 채권이 아니라 모든 이자를 합쳐서 받는 큰 금액의 채권이 됩니다. 이렇게 만든 채권을 ‘주택 저당 증권 (MBS)’라고 부르는데 모기지 회사는 이 은행, 저 은행 여기저기서 채권을 사서 계속 MBS를 만들었습니다. 안전한 주택 담보 대출에 기반한 채권이니 MBS 역시 안전하다는 평가에 트리플 A 등급을 받습니다. 그럼 안전한 채권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이 MBS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모기지 회사는 수백, 수천 개의 MBS를 만들고 또 다른 회사에 팔아 넘깁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또 MBS를 합쳐서 트리플 A 등급의 우량 채권을 만들고 이 채권을 ‘부채 담보부 증권 (CDO)’라고 부릅니다.
위태위태한 부실채권
이제 모든 채권에서 각각 매월 이자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수많은 채권 중에 일부 채권이 부실할 가능성은 없을까?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사람들 중 일부가 연체하게 되면 이자를 못 받게 될 것이고 연체가 된 채권은 안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당시 대출해 줬을 땐 소득이 없는 사람도 일자리나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 줬습니다. 즉 신용도가 낮아도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줬고 대출 조건도 원금은 상환하지 않고 10년간 이자만 내도 되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금리는 낮고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MBS까지 합쳐 놓은 채권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자를 지급받는 채권은 트리플 A 등급, 뒤로 갈수록 후순위 채권이 됩니다. 이자를 받지 못하면 부실 채권이 되겠지만 등급이 낮은 위험한 채권인만큼 더 높은 금리로 투자자들에게 판매를 합니다. 마치 안전한 국채는 금리가 낮지만 위태위태한 회사채는 금리가 높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번엔 채권에 보험사가 개입합니다. 트리플 A 등급 합성 채권에 대해서 보증을 합니다. 이를 ‘신용부도 스와프 (CDS)’라고 하는데 보험사가 채권에 대해 보장해 준다면 채권이 손실을 내면 보험사가 손실 난 금액을 보장해 줍니다. 보험사는 1,000개의 채권 중 10개 정도는 연체를 하더라도 990명이 동시에 연체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가 상승, 금리 상승 그리고 폭락
저금리에 주택 수요가 계속 늘어나자 주택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니 미국 사람들은 돈 벌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넉넉하게 소비를 하기 시작하고 소비가 활발하다 보니 물가도 같이 오릅니다. 자산가격도 높아지고 물가도 오르는 상황이 오자 연준은 제어하기 위해서 2004년 6월부터 기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FOMC 할 때마다 0.25% 씩 무려 17 차례나 올렸고 그렇게 2006년 6월 금리가 5.25% 되었습니다. 높아진 주택 가격, 대출로 인한 가계 부채, 높아진 기준 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주택이 비싸니까 수요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대출을 받아서 투자하려고 해도 금리가 높아서 대출 수요도 줄어들었습니다. 집을 샀던 사람 같은 경우는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집을 팔려고 하지만 그렇게 뜨거웠던 주택 시장은 2006년 6월이 지나면서 차갑게 식어 갔습니다. 이내 곧 주택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하며 급격하게 하락세로 전환되었습니다. 대출자들은 높은 금리와 주택 가격 하락에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연체율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채권을 보증해 준 보험사들은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대형은행들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그날이 바로 2008년 9월 15일. 우리가 잘 아는 금융위기가 터진 날입니다. 당시 미국의 3위 은행인 메릴린치와 4위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같은 날 파산했고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인수되었고, 리먼 브라더스는 인수해 줄 투자자가 없어서 파산했습니다. 세계 1위 보험 회사였던 AIG도 많은 채권이 무너지며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금융 회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시중에 돈이 돌지 않으니 경제 체제나 기업 그리고 가게가 무너졌습니다. 이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